얼마 전 EBS에서 방영된 췌장암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처음엔 믿어지지 않았어요"라는 한 가족의 이야기는 비단 영상 속 주인공만의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 우리 주변 누군가에게, 혹은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현실이기에 더 마음이 쓰였던 것 같아요.
췌장암은 '최악의 생존율', '가장 두려운 암'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만큼 예후가 좋지 않기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리 절망하고 포기할 수는 없겠죠? 오늘은 우리가 왜 췌장암을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한 최신 정보들을 따뜻하게 풀어보려고 해요.
"소리 없는 암살자", 췌장암은 왜 무서운가요?
췌장암은 유독 발견이 늦고 치료가 어렵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먼저 우리 몸의 중요한 장기, 췌장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췌장이란 어떤 장기일까요?
췌장은 '이장'이라고도 불리며, 위장의 뒤쪽, 등뼈 가까이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장기예요. 길이가 약 15cm 정도 되는 가늘고 긴 모양을 하고 있죠. 췌장은 두 가지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먹은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소화효소를 분비하는 일(외분비 기능)이에요.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효소들을 만들어 십이지장으로 보내죠. 둘째는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과 글루카곤 같은 호르몬을 생성하는 일(내분비 기능)입니다. 정말 중요한 일을 하는 장기죠?
왜 발견이 이렇게나 어려운 걸까요?
췌장암이 '소리 없는 암살자'로 불리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 위치: 췌장은 몸속 가장 깊은 곳에 다른 장기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래서 암이 생겨도 외부에서 만져지거나 일반적인 검사로 쉽게 발견하기가 어려워요.
- 모호한 초기 증상: 췌장암의 초기 증상은 대부분 '속이 더부룩하다', '소화가 잘 안된다' 와 같은 일반적인 소화기 증상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위장약만 먹다가 진단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 빠른 진행과 전이: 췌장 주변에는 간, 위, 십이지장 등 주요 장기와 중요한 혈관들이 아주 많습니다. 암세포가 생기면 이런 주변 조직으로 쉽게 퍼져나가고, 림프관이나 혈관을 타고 멀리 있는 장기까지 전이되는 속도가 매우 빠른 편입니다.
2025년 최신 통계로 보는 췌장암
국가암정보센터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췌장암은 여전히 우리나라 암 발생 순위에서 10위권 안에 들고, 사망률은 매우 높은 편에 속합니다. 특히 5년 상대생존율이 약 15.9% (2018-2022년 기준)에 불과하다고 해요. 이는 다른 암들의 5년 생존율이 평균 70%를 훌쩍 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치입니다. 이 숫자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많은 분들이 절망감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왜 생존율이 가장 낮을까? 명의가 알려주는 췌장암]
혹시 나도? 놓치기 쉬운 췌장암 초기증상
앞서 말씀드렸듯이 췌장암은 초기 증상이 매우 모호해요. 하지만 우리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 귀를 기울인다면 조기 발견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습니다. 아래 증상들이 나타난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병원을 찾아 상담받아 보세요!
가장 흔하지만 애매한 신호: 복통과 소화불량
췌장암 환자의 약 90%가 경험하는 가장 흔한 증상은 바로 복통입니다. 주로 명치나 상복부에 나타나는데, 콕콕 쑤시기보다는 둔하고 지속적인 통증인 경우가 많아요. 특히 통증이 등 쪽으로 뻗치는 방사통이 나타난다면 췌장암을 강력하게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소화불량, 식욕부진, 구역질이 계속되는 것도 중요한 신호일 수 있어요.
갑자기 찾아온 당뇨, 혹은 혈당 조절의 어려움
이건 정말 중요한 신호인데요. 가족력도 없고, 비만도 아닌데 50대 이후에 갑자기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면 췌장암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서 혈당 조절이 안 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에요. 기존에 당뇨병을 앓고 있던 분이라도 특별한 이유 없이 혈당 조절이 갑자기 어려워졌다면 이 또한 췌장의 이상 신호일 수 있습니다.
눈과 피부가 노랗게? 황달
황달은 췌장암의 비교적 명확한 증상 중 하나입니다. 췌장의 머리 부분에 암이 생기면 담즙이 내려오는 길(담관)을 막게 되는데요, 이때 담즙이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고 혈액 속에 쌓이면서 눈의 흰자위나 피부가 노랗게 변하는 황달이 나타나요. 소변 색이 진한 갈색으로 변하고, 대변 색은 회색빛으로 옅어지며, 피부 가려움증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황달은 다른 증상에 비해 늦게 나타나는 편이지만, 발견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설명할 수 없는 체중 감소
특별히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는데도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평소 체중의 5% 이상이 이유 없이 빠졌다면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암세포가 우리 몸의 영양분을 빼앗고, 소화효소 분비가 줄어들어 영양 흡수가 잘 안되기 때문에 체중이 감소하는 것이죠.
절망 속 희망 찾기: 췌장암 치료법과 생존율
'췌장암은 걸리면 끝'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어야 해요. 의학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고, 새로운 치료법들이 속속 등장하며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유일한 완치의 길, 수술
현재까지 췌장암을 완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수술로 암 덩어리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단 당시 수술이 가능한 환자는 약 20% 내외에 불과하다고 해요. 암이 너무 크거나 주요 혈관을 침범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수술은 '휘플 수술(Whipple's operation)'이라고 불리는 췌십이지장절제술입니다. 췌장의 머리, 십이지장, 소장의 일부, 위의 일부, 담낭 등을 함께 절제하는 매우 크고 복잡한 수술이에요. 하지만 최근에는 수술 기법의 발달로 합병증은 줄고 성공률은 크게 높아졌습니다.
수술 전후의 든든한 지원군: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
수술이 어려운 경우나 수술 후 재발을 막기 위해 항암화학요법과 방사선치료를 시행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수술 전에 항암치료를 먼저 시행하는 '선행항암화학요법(Neoadjuvant chemotherapy)'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요. 이를 통해 암의 크기를 줄여 수술이 불가능했던 환자에게 수술의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수술의 성공률을 높이는 효과도 거두고 있습니다.
최신 치료 동향: 표적치료와 면역항암제
최근에는 암세포만 공격하는 표적치료제나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활성화시켜 암과 싸우게 하는 면역항암제가 췌장암 치료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BRCA 유전자 변이가 있는 췌장암 환자에게 '파프(PARP) 억제제'라는 표적치료제가 좋은 효과를 보이는 등 개인 맞춤형 치료의 시대가 열리고 있어요. 아직은 제한적인 경우에 사용되지만, 계속해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 앞으로 더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해 봅니다.
췌장암, 예방이 최선입니다! 생활 속 실천법
모든 병이 그렇듯, 췌장암도 예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위험 요인을 알고 피하는 것만으로도 발병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어요.
췌장암의 위험 요인들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위험 요인은 단연 흡연입니다. 흡연자는 비흡연자에 비해 췌장암 발생 위험이 2~3배나 높다고 해요. 금연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이외에도 만성 췌장염, 50세 이후에 발병한 당뇨병, 췌장암 가족력, 비만, 과도한 음주 등이 위험 요인으로 꼽힙니다.
건강한 췌장을 위한 생활 습관
금연과 절주는 기본이고, 기름진 음식과 붉은 육류, 가공육 섭취를 줄이는 것이 좋아요. 대신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충분히 섭취하고, 규칙적인 운동으로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췌장 건강에 큰 도움이 됩니다.
고위험군이라면 정기 검진은 필수! 😉
만약 위에서 언급한 위험 요인에 해당한다면, 아무 증상이 없더라도 정기적으로 췌장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현명해요. 일반 건강검진의 복부 초음파로는 췌장을 자세히 보기 어려우므로, 전문의와 상담 후 복부 CT나 MRI, 내시경 초음파(EUS) 같은 정밀 검사를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엔 믿어지지 않았어요"라는 절망적인 한마디가 "함께 이겨낼 수 있어요"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바뀔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췌장암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제가 나눈 이야기가 여러분과 소중한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